※본 포스팅은 작품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과 스포가 매우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원래 국내문학을 잘 안 읽다 황정은 작가의 작품들을 접하고 한동안 국내문학만 읽던 시기가 있었다.
그 무렵 다양한 국내문학을 만나게 된 게 문학동네가 매년 출판하는 『젊은작가상 수상모음집』이었다.
『2017 제 8회 젊은작가상 수상모음집』에서 강화길 작가의 「호수—다른 사람」을 보고 푹 빠져 바로 이 작품까지 읽었다.
최근에 문득 다시 읽고 싶어져 한 번 더 읽게 됐다.
<간략한 줄거리>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집이다 보니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넘어갈까 한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키워드를 관통하는데, 바로 ‘불안’이다.
총 8편의 단편은 대부분 ‘1인칭’의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등장한다.
각 소설 속 인물들이 느끼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불안’을 보여준다.
책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의 선율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신예의 출연”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
: 미지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
앞서 말했듯, 이 단편집의 공통된 키워드는 ‘불안’이다.
각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불안’의 요소를 빠르게 읊자면,
「호수—다른 사람」: ‘민영’의 남자친구의 정체.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 ‘니꼴라 유치원’의 정체.
「괜찮은 사람」: ‘나’의 남자친구의 진의.
「벌레들」: 온 동네를 뒤덮은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 떼.
「당신을 닮은 노래」: 암투병을 하는 ‘나’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다소 충격적인 결말부.
「방」: 도시가 무너져버린 디스토피아적인 세계.
「눈사람」: 알 수 없는 벌레 떼로 인해 다 도망가고남겨진 어린 아이의 이야기.
「굴 말리크 기억하는 것」: 알 수 없는 창고와 폭력적인 사람들.
인간은 낯선 상황과 환경에 직면할 때 공포를 느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할 때, ‘불안’은 점차 온몸을 잠식한다.
각 단편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환경에서 현재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미지’와 ‘무지’가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불안에 떨게 만든다.
주목할 점은 그 ‘불안’은 객관적이지 않다.
불안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며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코 공감될 수 없는 요소다.
아무리 동일한 상황에 놓였다 해도,
그 상황에 놓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상황은 평범한 일상이 될 수도, 극한의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본 단편집은 그러한 주관성과 상대성을 잘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인 인물들이 특정 상황에서 불안에 노출되는 장면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혹자는 ‘그게 왜?’, ‘너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치부할 지도 모를 상황에서
이 인물들이 어떤 부분에서부터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작품은 ‘1인칭 시점’을 채택하며,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 감정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황에 대한묘사 또한 전지적이지 않다.
오로지 인물 주관에 기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는 ‘독자’에 따라서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약자의 감정과 심리묘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느낄 수도,
단순히 스릴러 요소가 가미된 상황에서 불안에 떠는 가공의 인물의 이야기라는 픽션으로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전개와 연출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우리는 어느새 이야기에 몰입하고,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하나하나를 따라간다.
우리가 평상시에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순간을 잘 캐치해내 작품에서 잘 녹였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스릴러적인 몰입도를 가짐과 동시에 ‘불안’을 해체함으로써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남기기도 한다.
읽다보면 내가 저 ‘인물’과 동일한 환경에서 큰 것은 아니기에 평소 내가 느끼지 못 했던 불안도 존재한다.
그게 성별의 차이든, 자란 환경의 차이든, 세대 차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나는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서 누군가는 그러한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하나같이 열린 결말로 끝나는 작품들. 진실이 무엇인지 꼭 중요할까?
또 하나의 특징은 ‘열린 결말’이다.
모든 작품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작품 속에서 남겨진 이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남자친구가 범인인 걸까?
남자친구가 의도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걸까?
눈사람과 벌레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 투성이고, 결코 그 의문에 답을 남기지 않는다.
결말부도 물음표를 한가득 채채우며 끝이 난다.
모호함으로 가득 찬 결말에 실망할 독자들도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단 이 단편집뿐 아니라 ‘열린 결말’라는 엔딩 자체가 호불호가 크게 갈리니까.
하지만 단편집을 쭉 읽다보면 그 ‘진실’과 ‘결말’과 ‘의도’가 분명해야만 할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작품은 단 하나의 진실과 결말에 다다르기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겪는 인물들의 심리가 더욱 중요하게 자리한다.
강화길 작가의 『괜찮은 사람』은 그런 부분을 말하고자 한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떠한 절대적인 진실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A가 진실이라고 해서 불안하고, B가 진실이라고 해서 불안하지 않는 게 아니다.
꼭 불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심리 상태는 진실의 유무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인물들이 느끼는 불안은 그들이 당장 처해 있는 ‘상황’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불안하지 않을 그 상황을 겪어내는 ‘인물’,
그리고 실제로 비슷한 환경에서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시스템, 사회, 편견, 차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그 불안을 말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명확한 진실은 불필요했거나 존재할 수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혹은 그 결말에 대해 작가 본인도 함부로 적지 못 했을 수도 있다.
물음 뒤에는 꼭 답이 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답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기에, 물음을 통해 담론 자체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리는 것 또한 의미가 있는 행위니까.
: 국내문학에게 친숙하지 않은 분들께 추천.
순전히 나만의 기준으로 국내소설엔 크게 3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웹소설이 워낙 커져 4가지로 분류를 해야 할까?)
(이 파트는 일기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 묘사나 문장이 굉장히 친절하고, 신선한 소재를 소프트하게 힐링 느낌으로 따라갈 수 있는 소설 (ex 달러구트 꿈 백화점)
- 흔히 순수문학 또는 등단문학으로 불리는 소설. 사회 비판적이고,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현재 대부분의 국내 소설
- 또는 1번과 2번 사이에 있는 소설, 친절한 묘사와 문장 + 사회 비판적인 메세지. (ex. 아몬드)
철저히 내 경험을 토대로 얘기를 하자면, 주변에서 국내문학은 선뜻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웹소설 시장이 점점 커지는 것과 맞닿아 있는 부분인데,
내가 사는 것도 바쁘고 힘든데 시간 들여 책까지 읽으면서 왜 또 현실 이야기를 들어야 하냐는 말들이 많다.
여가 시간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나 순수 재미를 추구하고 싶다는 마음들이다.
반박을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문학은 사회 비판적이고 메세지가 가득하고, 소외되거나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로 대학 시절 ‘사회적인 메세지가 없는 이야기는 문학이라고 볼 수 없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과거부터 강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의 역사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를 지나 군부 독재를 겪으며 문학이 컸던 영향도 있지 않을까?
나도 언제부턴가 책을 추천할 때면 현재 등단문학 작품들을 추천하지 않는다.
진입장벽이 꽤 크다는 건 동감하니까.
(미하엘 엔데 『모모』/ 손원평 『아몬드』/ 아니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들을 처음으로 추천하곤 한다.)
옛날에는 그래도 한국문학을 사랑해야 한다고, 시간을 내서라도 읽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던 때가 있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이것도 일종의 선민의식 같기도 하고, 그때는 웹소설을 인정하지 못 했던 어렸던 시기기도 했으니까.
이제는 그 어떤 선민의식도 없다.
내가 그들에게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잔소리한 권리는 없다.
나라고 완벽한 인간은 아니고, 모두의 취향과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보낼지는 존중되어야 하니까.
나도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듦과 독서 시간이 비례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국내문학 맛을 보여주고 싶은 건 여전하다.
국내문학만의 색깔이 분명히 있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현학적일 수도 있고, 교훈적이고 사회 비판만 가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재미라는 영역엔 비단 ‘웃음’과 ‘개그’, ‘액션’과 ‘자극’만 있는 건 아니니까,
한의 정서라 불리는 우리나라 문학의 이 차가운 영역도 한 번은 발을 들여봤으면 좋겠다.
때문에 『괜찮은 사람』을 추천하고 싶다.
강화길 작가의 작품은 여러 사회적인 문제 의식과 시스템에서부터 발생하는 폭력을 말한다.
그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불안과 감정을 정말 섬세하게 살펴간다.
동시에 스릴러의 요소도 넣고, 어두운 미장센과 맥거핀을 적극적으로 활요한다.
때로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구축하여 계속 뒷내용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차분히 알아가는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국내문학이 여전히 난해하고 어렵다면 이 작품을 통해 한 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유려한 문장과 그들이 전하는 따듯한 시선과 날카로운 펜의 감각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절대 강화길 작가의 작품들이 쉽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앞서 서술한 열린 결말과 맥거핀,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통해 더욱 불친전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작품이 가진 장르적인 특성은 아직 국내문학과 친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완주할 수 있는 매력을 불어넣어준다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