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Chi Chi island (Prod. Conda)
03. 역마 (Feat. 나플라) ((Prod. Conda, BLNK)
04. DEADMAN (Feat. 창모, 차붐) (Prod. Conda)
05. Rollecoaster Ride (Feat. 넉살, 염따) (Prod. Hukky shibaseki)
06. 원을 그리며 장작을 줍다. (Prod. Conda)
07. Buring (Prod. Conda) (title)
08. Morphine (Prod. Conda)
09. Dejiva (Feat. 사이먼 도미닉) (Prod. Conda) (title)
10. NETFLIX (Prod. Chilly)
11. Whe i was caught (Feat. 팔로알토) (Prod. STAYP)
12. 모닥불 (Feat. 김오키) (Prod. Conda)
13. FLAME ! (Prod. Hukky shibaseki)
14. Playground (Prod. Conda) (CD only)
리짓군즈의 래퍼인 블랭(BLNK)의 정규 2집이다.
어느덧 발매한지 6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촌스러운 것 하나 없이 즐거운 앨범이다.
오랜만에 블랭의 랩이 듣고 싶어 찾아 들었다.
총 43분이라는 컴팩트한 러닝타임 속에 화려한 피쳐링과 프로듀서진을 자랑한다.
힙합팬이라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 라인업이다.
여기에 20년도 당시에는 프로듀서한테 크게 관심을 안 줬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현 시점 엄청난 커리어를 자랑하는 ‘허키’에 수많은 작업물을 ‘콘다’와 ‘칠리’ 등 가슴이 웅장해진다.
각설하고, 본 앨범은 블랭의 정규 앨범인 만큼 블랭이 주인공이다.
정규답게 앨범 하나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블랭의 이야기를 가득 담았다.
Flame. 불꽃. 불길.
블랭이 말하고 싶은 ‘FLAME’은 뭐였을까.
첫 번째 트랙 <Love is>부터 블랭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난 물어보네 alone
꽤 어려운 그 단어를
그리 단순할 리 없던
Love is—1번 트랙 <Love is> 中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베푸는 것이 사랑일까? 어쩔 땐 단순히 섹스로 치부되기도 한다.
없는 놈은 죽어라 없어
돈 같기도 해 어쩔 땐
Credit card 같은 것도 없지 여기엔
What’s love 많이 고민 해봤어…
사랑 하나 책임지지 못한 놈이기에
아직도 난 그걸 돈이라고 부르지—1번 트랙 <Love is> 中
화자는 결국 사랑은 돈과 닮았음을 말한다.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 돈이라는 ‘현실’에 막히는 일은 빈번하니까.
이 자문자답은 도입부로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낸다.
비교적 잔잔한 비트와 뒤로 울려퍼지는 다양한 사운드가 만들어주는 ‘혼자라는 공간감’
역시 앨범의 프롤로그라는 느낌을 제대로 살려낸다.
2번 트랙부터는 본격적으로 앨범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Don’t judge me erbody
…
난 불타오르고 난 후
후회는 절대 않기로—2번 트랙 <Chi Chi island> 中
2번 트랙 <Chi Chi island>는 발랄한 비트 위에서 화자의 당당함이 돋보인다.
‘Chi Chi island’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향한 듯한 화자는 ‘그곳에서 나는 돈 벌어’라고 한다.
나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라고 한다.
넉살을 팔지 않는다고. (여담으로, 래퍼 ‘넉살’과 ‘넉살’의 정규 1집의 타이틀곡 ‘팔지 않아’를 이용한 펀치라인)
비싼 안주는 아니더라 그냥 친구랑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순간을 기억한다.
래퍼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조카에게 선물을 주고 싶기도
집안이 힘들어지며 건물까지 뺏긴 엄마를 보는 것도
12년 동안 애인에게 별 다른 기념을 하지 못하는 것도
마음 아프고 미안하면서도, 화자는 ‘Chi Chi island’라는 주문을 외운다.
세상은 꼭 양자택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본인만의 길을 찾아 가려고 한다.
즉, 세상이 말하는 ‘돈(현실)’이 중요한 것도 알고 화자의 마음도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화자는 ‘Chi Chi island(이상)’을 쫓아간다.
난 불타오르고 난 후
후회는 절대 않기로—2번 트랙 <Chi Chi island> 中
‘이상’을 쫓으며 청춘과 본인을 불태우더라도 절대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으로.
하지만 무언가 일을 저지르기 전에 ‘후회’라는 단어가 먼저 나온다는 것은,
스스로도 그 끝에는 결국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내면 어딘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뒤로 이어지는 <역마> – <DEADMAN> – <Rollercoaster Ride>의 구성은
‘Chi Chi island(이상)’로 향한 화자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난 머물지 않아 돌아 역마 (Trip it)
내가 본 것들을 섞어
결과는 몰라 (왜, 왜, 왜, 왜)
…
do it, do it, do it, do it
(trip or die, trip or die)—3번 트랙 <역마> 中
그는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면 ‘역마’처럼 돌아다닌다.
세상이 말하는 ‘안정’과는 다소 다른 방향에 있는 단어다.
화자는 그렇게 ‘현실’이 아닌 멋따라 맛따라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가며 청춘을 보낸다.
Revive, jump out the wall (Representin’)
난 Braveheart, William Wallace
부활 (Get out the way)
여기 here we are (Walking like a dead man)
밑바닥 (Eh-hey, let’s roll)
But I don’t give a fuck
Walking like a deadman, yeah (Way, way, way)—4번 트랙 <DEADMAN> 中
그렇게 ‘이상’을 쫓아 곳곳을 돌아다니는 화자의 태도는 매우 당당하다.
스스로를 서부극의 주인공 ‘데드맨’이자 스코틀랜드 영웅 ‘William wallace’라 칭한다.
다들 표정 좋지 난 못 섞이는 vibe, vibe
Call me cockroach, I’m yelling even die
Beamer Chevy 뒤에 Motherfucking cycle
바닥 찍고 올라가지 Rollercoaster ride—5번 트랙 <Rollercoaster Ride> 中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상’을 추구하다 ‘돈’이 없는 궁핍한 삶이라도 상관이 없어보인다.
바퀴벌레라 불려도 죽어가는 순간까지 소리를 지른다는 포부.
Beamer, Chevy가 아닌 자전거를 타는 삶.
설령 바닥으로 향한다 하더라도, ‘Rollecoaster’처럼 다시 올라오리라고 말한다.
남들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추구하는 삶을 멋있게 살아가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태어날 나의 Brithday
지난 트랙처럼 지난 내 과거는
이 의식을 준비하며 태워 날아갔지 훨훨—6번 트랙 <원을 그리며 장작을 줍다.> 中
하지만 그 화려하게 불태우며 살아갔던 삶의 끝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Chi Chi island(이상)’으로 향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타오르기 위해 ‘장작을 줍는다.’
이 트랙은 후반부에 Burning을 반복적으로 읊조리며 다음 트랙으로 한 곡처럼 연결된다.
이 <Burning> 을 기점으로 곡의 분위기는 2~5번 트랙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된다.
2015년의 컬러 그린
부끄러운 그 단어를 난 거부했지
작년의 내 우울증이 건드린
그 단어들로 이 앨범을 저글링
난 죽은 사람처럼 엎드리지
역마살 때문에 다시 돌아오지
또 롤러코스트는 하찮은 지금
내 사랑을 설명하지—7번 트랙 <Burning> 中
‘이상’을 꿈꾸는 청춘을 불태웠던 화자는 결국 본인 스스로가 화마가 되어 몸과 마음까지 지치고 만다.
꿈과 열정은 사람이 미래를 향해 달릴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강렬한 불과 같은 에너지에 잡아먹혀 ‘번아웃’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 <Burning>이란 트랙은
그 전까지 이상을 쫓으며 찬란했던 삶을 살던 화자가
결국 본인의 마음까지 불태우며 힘들었던 시기를 말하고 있다.
컬러 그린.
블랭이 5년 전 정규 1집(Color Unique)에서 말했던 Green이란 단어가 부끄럽다고 말한다.
작년의 우울증으로 본 정규 2집이 시작되었음도 고백한다.
또한 <Chi Chi island> 이후 화자의 당당함을 보여줬던
<역마> – <DEADMAN> – <Rollercoaster Ride>와 정반대의 심정을 표현한다.
곳곳을 돌아다니던 ‘역마’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음을.
서부극의 주인공이었던 ‘데드맨’은 그저 죽은(데드) 사람(맨)이었음을.
바닥을 찍더라도 결국은 다시 올라갈 거라던 ‘롤러코스터’는 하찮았음을 말한다.
사랑을 만지는 내 손은 미끄러워졌지
그저 할 수 있는 건 불타오르는 것
Let’s burn—7번 트랙 <Burning> 中
사랑을 설명하려 해도 손에서 미끄러져나갈 뿐이다.
이미 한바탕 스스로를 불태웠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화자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불타오르는 것뿐이다.
그게 블랭이 시작했던 삶이었으니까.
이 트랙이 되게 재밌었던 건 곡이 하나의 거대한 주문 의식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곡 내내 ‘Burning, we just burnin’이란 노랫말이 반복적으로 주문 외우듯이 흐른다.
은은하게 부족민들의 전통 타악기와 비슷한 사운드가 지속적으로 들려온다.
전 트랙 <원을 그리며 장작을 줍다.>에서 ‘의식’이란 표현을 쓴 점까지 겹친다.
블랭의 화려했던 인생 1막 (2~5번트랙)을 지나 다음 막을 향해 가기 전,
다시 한 번 몸을 불태울 수밖에 없던 의식처럼 보여 더욱 앨범의 흐름을 맛있게 살려냈다.
넌 계속 조금만 더 난 이미 끝낸 이 게임이
끝나지 않고 처음 화면이 켜지고 깨달아 lately
난 불탄 채 이곳을 도는 장난감인 걸
30바퀴째 기찻길 위를 도는 Train toy
…
내가 노래하던 야자수와 Bonfire
어찌 보면 그건 꿈이었던 걸까—8번 트랙 <Morphine> 中
다시 자신 불태우는 화자는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화자는 무언가를 마시는 듯한 효과음이 들리며 ‘모르핀’에 취해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과거에 회의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게임은 끝났는데 장난감 기차처럼 불에 탄 채 같은 곳만 빙빙 돌며 방황한다.
노래하던 야자수와 캠프파이어(블랭이 속한 리짓군즈의 상징과도 같다.)는 모두 꿈이었던 걸까?
Late night my crew
Focus on my deja vu
That’s why I spend my fucking time—9번 트랙 <Dejavu> 中
9번 트랙 <Dejavu>는 리짓군즈 간 술자리 속 실제 녹음으로 시작한다.
블랭은 다시금 자신의 크루와 함께 걸었던 여정을 돌아본다.
그렇게 다시 꿈을 천천히 꾸려한다.
이어지는 10번 트랙 <NETFLIX>에서도 리짓군즈끼리 대화를 하는 녹음이 지나간다.
그 녹음 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블랭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블랭은 자신이 좋아했던 치킨과 넷플릭스를 찾는다.
이미 한 바탕 불태운 후 번아웃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제자리 돌아왔던 블랭.
그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소소한 행복들을 다시 찾기 시작한다.
자신이 치킨과 넷플릭스를 좋아했음을.
이번 장마에 어울리는 영화를 너와 함께 보는 게 좋았음을.
난 거울 속의 불꽃을 봤지
고난이라는 언덕에 나
뭔가 타오르길 바라는 듯 내 얼굴을 봐
그때 너넨 몇 발작 물러섰잖아
잘되길 바라는 그 놈들은 다
아부처럼 가짜를 내 술잔에 따라
이 취기는 너도 겪었던 걸 알아
씨발 청춘은 우리 같이 훔쳤잖아—11번 트랙 <When I was caught> 中
‘너’를 인식하면서 홀로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변에 남은 사람은 몇 없다.
화려하며 무서운 거 없이 삶을 즐기던 청춘을 모두 불타 사라졌다.
블랭이 무너져갈 때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몸을 불태우기 위한 의식을 모두 마쳤다.
과거를 돌아보고, 한탄도 해보고, 스스로 뭘 놓치고 있었는지도 깨달았다.
‘너’가 있었으면 좋겠고, 사랑이 뭔진 몰라도 내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대로 불길 속으로 빠지면 과거는 다시 반복될 뿐이고,
이미 한 번 불타버린 마음은 완전히 산산조각날지도 모른다.
떠나가는 것은 불에 타는 장작
후회하지 않을 거란 말을 이제야 알아
끝맺음이란 단어를 이해하게 된 난
모든 것에 이제 도망가지 않아 엄마—12번 트랙 <모닥불> 中
블랭은 12번 트랙 <모닥불>에서 이 불길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늘 도망만 갔던 스스로를 살핀다.
안아주길 원했던 엄마가 낯간지러워 모른 척 한 적도 있지 않았나.
엄마는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힙합펀치도 한다.
하지만 블랭은 여태 늘 도망을 다녔었던 것이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2번 트랙부터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불태웠던 것은
어쩌면 블랭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13번 트랙 <FLAME !>은 1번 트랙 <Love is>와 마찬가지로 앨범을 전체를 관통하는
아웃트로로서의 역할을 하며 마무리를 짓는다.
그 LOVE이란 단어만큼 어렵긴 어렵지
자극만을 받아와서 높아지는 역치
잠을 자지 못하면서도 마시는 커피
빨간 눈 TV의 허무함을 섭취
이 시대 온전하지 않은 우리 정신
얼마를 줬나 저울질 하는 저 덩치
주는 걸 전부 써 내려가면 혹시
받을 걸 적은 적 있나 보면 말이 없지
본질은 너의 눈 속에 있어 FLAME—13번 트랙 <FLAME !> 中
사랑은 받아본 사람만이 베풀 수 있다고 생각했던 블랭은
스스로 먼저 사랑을 줬던 적은 있었나 돌아본다.
받았던 것을 끝까지 기억은 하고 있었나 생각한다.
그는 ‘이상’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연료삼아 여태까지 스스로를 불태워왔다.
이제는 그 불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불에 몸을 던지는 게 아닌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모닥불을 만들어냈다.
그 사랑은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가면 된다는 것도 잊지 않으며.
그 본질은 스스로에게 있음을 말하며.
20년도는 19년에 이어 굵직굵직한 힙합 명반과 수작들이 쏟아졌던 한 해였다.
<DETOX>도, <FOUNDER>도, <가로사옥>도, <선인장화>도 좋았지만 이상하게 이 앨범에 계속 마음이 더 간다.
특히 <모닥불>같은 경우는 20년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플레이리스트에서 없어진 적이 없다.
정규앨범이 가지는 유기적인 움직임, 앨범으로 통으로 돌렸을 때 전해지는 그 맛 모든 게 좋았다.
제이호도 아이딜과의 합작 앨범으로 돌아온 만큼 블랭의 3집도 기다려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