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작품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과 스포가 매우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제목 : 소나티네 (Sonatine, 1993)
감독 : 기타노 다케시
출연 : 기타노 다케시, 고쿠마이 아야, 와타나베 테츠, 오스기 렌 등
장르 : 느와르, 폭력
러닝타임 : 94분
2000년에 개봉한 영화다.
2000년생인 내가 이 영화를 어떻게 알 게 됐는지는 기억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영화 <배틀 로얄>을 보고,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찾아보다가 알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간략한 줄거리>
한 야쿠자 조직의 행동대장 ‘무라카와’.
그는 오야지의 의형제를 돕기 위해 파견을 나가게 된다.
하지만 일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일이 꼬인 ‘무라카와’는 살아남은 몇 명의 동료와 외진 곳으로 도피하게 된다.
해변가로 몸을 숨긴 그곳에서 어린 아이처럼 시간을 보내다,
결국 오야지에게 버림을 받고 몇 명 안 남은 동료들마저 잃게 된다.
그 끝에 비참한 복수만 남아있었다.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허무주의’ 아닐까?
매우 과감한 표현이 될 수도 있겠으나,
일본 문학에 있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있다면,
일본 영화에는 ‘기타노 다케시’의 <소나티네>가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행동과 감정.
본 영화 속 인물들의 움직임은 굉장히 이질적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을 거세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인물들을 프레임 속에 가두고,
인물들도 딱히 그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뻣뻣한 목각인형처럼 굳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말해, 카메라 워킹이 엄청나게 제한적이다.
영상을 찍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는 것 같다.
인물들도 역동적으로 움직이기는커녕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
예컨대 양 진영 간에 총을 쏘는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인물들은 가만히 차렷 자세로 한손으로 총만 들어 쏜다.
화려하게 긴박감 넘치는 연출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로봇처럼, 기계처럼, 인형처럼 가만히 무심하게 총격씬을 이어나간다.
이런 독특한 연출을 통해 인물들로 하여금 무기력한 느낌을 뿜어낸다.
인물들은 모든 행동에 있어 자의가 전혀 없는 매우 수동적인 인물처럼 그려진다.
동시에 감정 또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극도로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 표출 또한 극한으로 억제되어 있다.
사람을 죽일 때도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이 과도한 폭력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감각한 모습을 보인다.
슬픔, 경악, 충격, 절망과 같은 감정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내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바로 옆에서 동료가 죽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무런 리액션이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영화에서 지나가는 ‘엑스트라1’이 죽어도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진 않을 것이다.
심지어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기억에서 철저히 잊혀진 존재가 된다.
비중이 있는 인물이든, 없는 인물이든 중요하지 안다.
죽음 이후에는 그 인물과 관련된 회상이나 언급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이렇게까지 카메라 워킹, 인물의 움직임, 인물의 감정 등을 거세시킴으로써 얻는 효과는 무엇일까?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운명론적 허무주의’가 아닐까?
폭력과 경쟁, 시기와 질투로 점철된 세계.
‘무라카와’는 돈,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을 가진 인물이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조직 내에서 사실상 실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조직 두목이 담배를 피기 전까지 다들 눈치만 살피는데, ‘무라카와’ 혼자 그냥 담배를 태운다.)
하지만 계속 되는 경쟁, 그게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인생에 환멸을 느낀다.
‘무라카와’는 야쿠자의 삶이기 때문에 조금 더 거칠게 표현되었지만,
결국 감독이 말하는 건, 이 모든 게 우리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경쟁 속에서 산다.
공부로 시작하여, 대학교 앞에 놓인 수능, 대학을 진학한 후 마주하는 취업의 벽, 그 후 직장에서도 이어지는 승진 싸움.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달라지는 것 하나 없이.
이 관성적인 반복에서 환멸을 느끼고, 무의미함을 깨닫고, 결국 허무함을 본다.
그 과정의 끝에 서 있는 인물 ‘무라카와’를 통해 인생의 허무주의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정해진 삶 속에서 반복적인 경쟁 시스템을 살아가는 우리.
우리는 ‘무라카와’처럼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도 같이 거세되어 주변에 누군가 쓰러져도 돌아보거나 기억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 그럼에도 꿈꾸는 이상향, 해변가.
그렇다고 이러한 장면으로 2시간 내내 이어졌다면, 영화가 다소 지루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감독은 이 폭력과 반복, 환멸과 허무함 속에 완벽히 대비되는 공간을 집어 넣었다.
바로 ‘무라카와’ 일행이 도피하다 머물게 된, 해변가 앞에 위치한 작은 집.
이곳에는 죽음, 허무, 슬픔, 절망 따위는 전혀 없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무라카와’ 일행은 마치 모든 걸 잊은 채 어린 아이로 돌아간 것만 같다.
어린 시절 즐겨하던 놀이를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폭죽 놀이를 하고,
모래사장에 남몰래 파놓은 땅굴에 동료를 빠트린 후 배가 빠지게 웃기도 한다.
여태까지 인물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감정의 표출이 ‘해변가’에서는 원 없이 드러난다.
즉, ‘도시’는 ‘무라카와’가 야쿠라조서 살고 있는 폭력을,
‘해변가’는 그 현실 반대에 있는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해변가’ 파트를 보며 저 순진무구함에 나의 어렸던 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실뜨기나 공기놀이, 딱지, 공책 RPG, 축구 등등
또한 이 뚜렷한 두 공간의 대비가 ‘무라카와’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도시’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와중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무라카와’.
그 거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하나 없이 정해진 기계처럼 움직이는 ‘무라카와’.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에게도 분명히 감정이 존재했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해변가’와 같은 공간과 시간은 지속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언젠가 ‘이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점차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언인지 잊어가며
눈앞에 놓인 ‘현실’을 숙제처럼 이행하며 묵묵히 시간을 보낸다.
이 두 공간의 대비는 이러한 인생 속 허무함을 더욱 짙게 표현한다.
: <소나티네>라는 의미, 3악장으로 구성된 영화.
<소나티네>라는 제목과 걸맞게 3악장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각 장은 앞서 언급했던 ‘도시’와 ‘해변가’ 두 공간의 이동으로 확실하게 구분한다.
1악장.
무분별한 폭력 안에서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도시 속 ‘무라카와’의 모습.
2악장.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 ‘해변가’에서 어린 아이의 순수무구함을 보여준 ‘무라카와’의 모습.
3악장.
다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처절한 복수를 위해 다시 속으로 들어가는 ‘무라카와’의 모습.


이 <소나티네>의 결말은
‘도시’와 ‘해변가’를 이어주는 도로 한 가운데에서 ‘무라카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끝이 난다.
결국 폭력과 순수함 그 사이 경계 어딘가에서 쓸쓸히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 또한 이토록 허무할 수가 없다.
영화 도중에 한 번 ‘무라카와’는 이 공간 사이에서 차가 풀밭으로 미끌어져 멈춘 적이 있다.
어쩌면 이때부터 감독은 관객에게 암시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공간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고,
한 번 ‘현실’을 택했던 ‘무라카와’는 ‘이상’의 공간을 맘 편히 넘나들 수 없는 그 허무함을 보여준다 생각한다.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도 다시 ‘이상’의 공간으로 넘어가지 못 하고 그 경계에서 끝을 선택하고 만다.
단순히 폭력적인 야쿠자 영화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무라카와’라는 인물을 통해 그보다 더욱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삶의 허무함, 인간 존재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 현실 속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수동적인 인물 등.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동시에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에 더욱 여운이 깊은 영화다.
★★★★★
독특한 촬영 기법과 배우들의 열연.
영화적으로 비유로 표현되는 여러 메세지.
참으로 쓸쓸했던 영화였다.
정말 재밌게 본 작품이다.
이런 허무함을 좋아해서 더욱 재밌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