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의 리뷰

영화 <황해> // 허무하고 지겨운 삶, 개들의 처절한 사투.

※본 포스팅은 작품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과 스포가 매우 매우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영화 정보
제목 : 황해 (The Yellow Sea, 2010)
감독 : 나홍진
출연 : 하정우, 김윤석, 조성하 등
장르 : 범죄, 스릴러, 액션
러닝타임 : 156분

<간략한 줄거리>

와이프를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빚을 쓴 조선족 ‘구남’.
그 빚을 갚기는커녕 마작에 빠져 산다.


어느날 ‘면정학’이 찾아와 빚을 한 번에 갚아줄 테니
한국으로 넘어가 사람 하나를 죽이라고 한다.


별 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구남’.
‘면정학’의 살인 청부를 승낙하고 한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예상치 않은 온갖 암투가 드리우고
오해와 갈등이 얽히고설켜 ‘구남’은 진흙탕을 구르게 된다.


: 처절한 개들의 사투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은 영화 초반 ‘구남’의 내레이션으로 설명된다.

병에 걸린 개는 제일 먼저 제 어미를 물었고 이후 아가리로 물 수 있는 건 모조리 물어 죽였다. 며칠 뒤 삐쩍 마른 꼴로 나타난 그 개는 천천히 드러누워 죽었고, 개를 묻어줬다. 어른들은 그날 밤 묻힌 개를 꺼내 잡아 먹었다. 다시 개뱅이 돌고 있다.

주인공인 ‘구남’뿐 아니라, ‘면정학’과 ‘김태원’ 모두 광견병에 걸린 개들과 같다.

목적도, 이유도 없다.
눈 앞에 닥쳐오는 장애물들을 물어뜯을 뿐인, 본능에 이끌리는 인물들이다.
마치 모든 명분을 잊은 채 병에 걸린 개처럼.

영화 초반 내레이션뿐이 아니다.

‘면정학’이 ‘구남’에게 일을 맡기는 장면의 미장센도 한몫한다.
미쳐버린 듯한 투견들의 모습, 끌려가는 개들, 갇혀 있는 개들의 모습이
이 작품 속 인물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는 ‘멋’도 ‘간지’도, ‘가오’도 없다.

정장을 멋있게 차려 입지도 않는다.
화려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킬러 영화처럼 각자를 대표한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살인만이 존재한다.
그저 손에 잡히는 모든 게 무기가 되고, 흉기가 된다.
설사 그게 개뼈라 할지라도.

이 사건을 결정적으로 묶게 된 원인조차 더럽고 추잡하다.

모두 내연 관계에서 벌어진 불륜이 원인이었다.

‘김정환’이 ‘면정학’에게 살인 청부를 의뢰한 이유는, 그가 ‘김승현’의 와이프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김태원’이 ‘김승현’을 죽이게 된 것도, ‘김승현’이 본인의 와이프도 아닌 내연녀와 같이 잤기 때문이다.
연락두절된 ‘구남’의 와이프 또한 바람 나서 그런 것이라는 소문이 판을 쳤다.

안 그래도 지겨울 정도의 살육이 벌어지는데,
그게 벌어진 이유마저 불륜과 질투와 탐욕 때문에 벌어진 거라는 허탈함.

영화 후반부, ‘구남’이 ‘김정환’과 ‘김승현’의 와이프의 외도 장면을 보고 울분을 참으며 자리를 떠나는 장면은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을 비춰준다.

참, 비참하면서도 역하고 더러웠던 스토리의 영화였다.

그런 영화가 어떻게까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 유일한 인간이 끝끝내 개병이 돌 때까지의 이야기

‘구남’은 다른 광견(‘면정학’, ‘김태원’, ‘김승현’, ‘김정환’)과는 사뭇 달랐다.

‘구남’이 한국에 온 표면적인 이유는 살인 청부지만, 진짜 목적은 아내를 찾기 위함이었다.

틈날 때마다 구겨진 아내의 사진을 꺼내 보고, 아내의 행방을 쫓았다.
그가 ‘가족’이라는 인간적인 가치를 붙잡고 있는 유일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또한, 경찰한테 용의자로 지목 받아 도망치는 와중에도 그의 인간성은 엿보인다.

산속에서 부상 당한 팔을 부여잡고 너무나 서럽게 울먹이는 모습.
인근 마을로 몸을 숨길 때, 짱돌 하나에 의지하며 겁에 잔뜩 먹은 모습.
문 하나를 열어도 잔뜩 움츠리며 작은 소리 하나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

하지만 극이 진행되고 사건의 진상에 다가갈 수록 그의 인간적인 얼굴은 점점 옅어졌다.

겁에 질렸던 인간은 결국 ‘김태원’의 부하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고문을 하는 개가 되었다.
죽어가던 ‘김태원’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
모든 일이 끝나고 아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함을 받은 그의 눈빛은
이 지옥에 빠트린 ‘면정학’의 그것과 매우 닮아 보였다.

모든 것을 상실하고 공허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면정학’의 눈빛을.
어쩌면 ‘면정학’은 과거 또 다른 ‘구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시종일관 공허했던 그의 눈에는 어떤 과거가 있었을까?

입체적으로 섬세하게 자리 잡힌 ‘구남’의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인 한 편이었다.
함께 배치된 ‘면정학’과의 시너지도 훌륭했다.

: 중국, 한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구남’

‘구남’의 캐릭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왜 <황해>인지.

중국에서 마작을 하는 ‘구남’은
같이 마작을 하는 중국인에게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비웃음을 산다.

한국에서도 조선족은 보호 받지 못하고 갖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구남’은 결국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죽지 못하고
이 두 나라의 경계인 바다 한 가운데에서 버려진다.

사진 출처 : 영화 <황해> / © 팝콘필름

단순히 현재 ‘조선족’에 대한 담론을 끌고 오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처음부터 병에 걸린 개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개장수의 모습과 도축장, 투견들의 모습을 그린다.

지저분한 명분 아래 무의미한 살육이 반복된다.
이를 담아내는 연출도 매우 잔혹하다. 지겨울 만큼.

이 아수라장을 2시간 40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 속에서
이 외로운 ‘구남’이라는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가지지 않았을까?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버림 받았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떠돌이 개처럼 살았던 ‘구남’.

끝끝내 바다 한복판에 버려지는 그의 소속감이 이 비극에 마침표를 찍는다.

: 허무함이 이 영화의 전부일까?

사진 출처 : 영화 <황해> / © 팝콘필름

영화 마지막 씬은 ‘구남’의 와이프가 큰돈을 벌어와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듯한 장면이다.

이를 두고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나뉜다.

  1. ‘구남’이 죽기 전에 상상한 와이프의 모습으로, 꿈에 불과하다.
  2. 실제로 와이프는 돌아온 것이었고, 이 영화의 허무함을 더해준다.

해석은 각자에 맡기고, 나는 조금은 다르게 보고 싶다.

처음에는 ‘구남’의 꿈이라고 생각했다.
장면의 배치가 죽음을 맞이한 ‘구남’이 본 일종의 환상이지 않을까?

몇 번 더 돌려보고는 생각이 바꼈다.
실제로 ‘구남’의 와이프가 돌아온 걸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렇다면 난 그녀의 귀환이 마냥 허무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본래의 목적을 이루고 돌아오는 장면을 통해
이 무의미한 삶 속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리뷰 내내 반복해서 말하는 부분이지만 이 영화는 정말 허무함이 가득하다.

사건의 원인도 불륜 때문이고,
시간이 흐를 수록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마음마저 든다.
사람도 수없이 죽어 나간다.
온갖 폭력의 형상이 2시간 40분 내내 지속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녀만큼은 본래의 목적을 지키고 돌아왔다.

무의미한듯한 이 삶 속에서,
단순히 비참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녀만큼은 지겨운 인생 속에서도 살아가는 이유를, 희망 같은 따뜻한 느낌을 줬다.


★★★★☆

2시간 40분 간 환기할 타임 하나 없이
폭력과 갈등과 오해가 반복적으로 쏟아져 나오다 보니 좀 피로하긴 했다.

그럼에도 재밌게 봤다.

‘구남’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허무함이 주는 이 씁쓸함
마지막 장면 하나로 조금은 해소해주는 장치까지.

나에게는 명작 라인에 들어갈 것 같다.

아무튼 누군가 추천해줄 수 있냐고 하면 무조건 추천해줄 것이다.
이런 류를 싫어하면 못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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